- 바빌론의 탑 (Tower of Babylon, 1990)
- 이해 (Understand, 1991)
- 영으로 나누면 (Division by Zero, 1991)
- 네 인생의 이야기 (Story of Your Life, 1998)
- 일흔 두 글자 (Seventy-Two Letters, 2000)
- 인류 과학의 진화 (The Evolution of Human Science, 2000)
- 지옥은 신의 부재 (Hell Is the Absence of God, 2001)
- 외모 지상주의에 관한 소고 (Liking What You See: A Documentary)
위의 목록은, 테드 창(Ted Chiang)의 단편선, 당신 인생의 이야기(Stories of Your Life and Others, 2002)에 수록된 소설들의 제목이다. 이 중 '네 인생의 이야기'는 영화 컨택트(Contact, 2016)의 원작이기도 하다.
테드 창이 장르의 문법을 넘어서서 꽤 재미있다는 이야기를 듣긴 했지만 반 정도를 읽어나갈 때까지도, 의구심을 떨치기가 어려웠다. SF와 판타지의 어디쯤에 테드 창이 존재한다는 것만은 확실했다. 과연 문학적인가에 대해서는, 물음표가 찍혔다.
'바빌론의 탑'은 이 단편선의 시작에 놓여있는데, 그가 단순한 우화를 창조하고자 했던 게 아니라면, 결말이 실망스러웠다. 해결해야 할 부수적 문제들이 많아보였기 때문이다. ‘탑을 쌓아 도달한 것이 다른 끝의 지상이라면 그 지상에서부터 다시 탑을 쌓을 경우, 도달할 지상이 또 존재할까? 그런 경우 지구는 어떤 모양일 것이며 그것은 인간이 지각 가능한 차원일까’ ‘여러 방향에서 동시에 탑을 쌓는다면 각 탑은 교차할 것이고 각각 다른 편 지상에 도달할 텐데, 공학적으로 버틸 수 있는 구조물일까’ ‘만유인력과 중력은 어느 방향으로?’... 물론 이런 질문들은 부수적이기 짝이 없어서, 무의미한지도 모른다.
그래서 방향을 틀어서 생각해보기로 했다. 탑을 "인간 의식의 진화과정"을 빗댄 거라 생각해보기로. 가령 어떤 인간이 스스로의 의식이 발달한다고 믿고 한 방향으로 열심히 나아가고자 한다고 치자. 그래서 벽돌을 나르고, 반죽으로 연결하고, 발판을 만들어서 딛고 오르려 한다. 그러나 어찌저찌 나아간다고 믿는 순간 화강암처럼 단단히 막힌 부분이 나타난다. 의식은 정체된다. 그러다 갑자기, 섬광의 순간이 찾아온다. 마침내 그는 이집트인들처럼 이질적이고 독특한 아이디어를 짜내게 되고, 이를 통해 난관을 헤쳐 나간다. 자아가 성장한다. 그리하여 마침내... 대홍수라는 마지막 공포마저 이겨내고 빛이 쏟아지는데... 마침내 도달한 그곳이 또 다른 원점이라는 게 테드 창의 이야기 결말이다. 나에게는 이 결말이 다소 맥 빠지게 느껴졌으므로 과연 다른 작품들도 이러면 어떡하나 싶었다.
독창적인 상황보다 부수적인 문제들이 더 돋보이는 작품들 : 바빌론의 탑, 영으로 나누면, 인류 과학의 진화는 그래서인지 재미가 없었고 심지어 머리가 아팠다.
'이해', '네 인생의 이야기'는 성공적인 이야기로 가고자 하는 일종의 몸부림 같은 이야기로 읽혀졌다. 음...
'네 인생의 이야기'는 왜 "당신 인생의 이야기"라는 소설의 제목과 다르게 번역이 되었는지 모를 일이다. 영화 '컨택트'란 제목만 들었을 때는, 예전에 조디 포스터가 나왔던 콘택트(Contact, 1997)의 리메이크 버전이라고 생각했다. 검색을 해보니 arrival 이라는 원제를 버린 데 대한 비판도 몇몇 보였다. 내 생각에는, 원작보다 영화가 훨씬 나았다. 다소 어렵게 느껴지던 장면들이 실제 눈 앞에 펼쳐지자 재미있었고, 시간이라는 것이 과거에서 현재로, 현재에서 미래로 흘러가는 것만은 아니라는 점을 이야기로 풀어내니 새로웠다.
이것이 테드 창이구나를 느꼈던 작품은 '일흔 두 글자' 그리고 '지옥은 신의 부재' 두 작품이었다.
둘 다 매력적이었다. 마치 근시점의 미래에 중세 시대의 판타지를 슬그머니 접붙인 상상력. 움직이는 골렘과 명명학, 천사들의 강림과 투명한 발밑의 지옥. 그러나 이 이야기들을 재미있게 만든 것은 등장인물들이었다.
특히 '지옥은 신의 부재'에 등장하는 닐과 재니스, 그들의 내면은 신에 대한 고민이 충분히 공감할만하게 그려져 있다. 과학이 종교를 앞선 시점에서도, 일부 과학자들은 여전히, 아니 오히려 더 신을 믿는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 있다. 테드 창도 내심 신의 존재와 부재에 대하여 고민을 거듭했던 게 틀림없다. 다른 이야기에서 부족했던 인간적 고뇌가, '지옥은 신의 부재'에 깃들어 있었다.
그러나 한 소설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단순한 사고의 실험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방사형으로 생겼고 딱 생긴 대로 말하는 외계인, 초지능을 가졌으며 니체의 초인을 연상케하는 '이해'의 주인공. 그들은 분명 흥미롭지만 내 생각에 그건 흥미에 그치기 좋은 소재로 보였다.
하지만 '일흔 두 글자'와 '지옥은 신의 부재'에서 보여준 그의 성과를 생각하면, 다음 작품이 기대되는 작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상상력의 측면에서 조금 더 과감하고 잔인해진다면 넷플릭스의 블랙 미러 다음 시즌에서는 테드 창의 이야기가 슬쩍 끼워지지 않을까란 기대마저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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