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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공부/가사번역

초절기교 연습곡 - 에이드리언 리치 [Transcendental Etudes - Adrienne Ri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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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절기교 연습곡*

- 에이드리언 리치

 

 

 

8월의 어느 저녁, 나는 차를 몰고

앤 여왕의 레이스라 불리우는 꽃들로 둘러싸인

시골길을 지나갔지.

차가 지나가자 놀란 초원의 사슴은

목 쉰 비명을 질렀고,

네 마리의 새끼 사슴이 그 뒤를 따라서

어두운 단풍들 사이로 뛰어오르더라고.

 

 

 

앞으로 석 달이 지나면 쟤네들도

뺑소니 사냥꾼들한테 좋은 목표물이 되겠지.

주말이면 파괴적인 힘에 도취되어,

간혹 자기 피로 어안이 벙벙해진 채

산산히 부서진 짐승들을 수습 못하고 떠나버릴 정도로 못난

그 술 취한 총잡이들의,

그들이 당긴 방아쇠의 좋은 목표물이 되겠지.

하지만 지금 깊어가는 한여름 저녁,

사슴들은 여전히 살아있고 또 자유로워.

이미 누렇게 잘 익은 과일들을 잔뜩 품은 탓에

꽤 묵직해진 나뭇가지에서

사과들을 갉아먹으면서

그들은 영원할 것만 같아.

헤스페리데스*의 사과 정원에서,

잘 조율된, 귀뚜라미 우는 소리 가득한 곳에서.

 

 

 

나는 늦게서야 현관의 앞마당에 섰네.

이러한 모든 달콤함의 어마어마한 연약함을 노래하는,

벌써 감상에 빠져서, 감상에 포착되어버린

이 푸르른 세계를 노래하는 나의 신경줄이

죽음이라는 걸 상기시켜줬지.

죽음에 대한 생각이 고집스럽게도 계속되었어.

오래된 헛간 판자에 그려진 가짜 버몬트 주 낙서를 지나서,

디스코텍, 인공의 눈, 

무관심 속에서 잉태되어 질 나쁜 폭력자로 성장하게 되는

버몬트 주의 병든 아이들,

가난이 그들 삶을 눈먼 고양이처럼 이빨로 갉아대고 있어.

나는

캐나다로 가려는 여행객들을 위해

불도저로 밀어져버린 조용한 마을의 상처들로부터 벗어나

먼지로 가득한 길 쪽으로 돌아섰어,

그러고도 죽음에 대한 생각은 계속되었지.

나는 아주 부드럽고 경사진 들판 위의

돌로 된 울타리에 앉았어.

농가들은 잔잔한 불빛 속에서 고요하게 기울어져 있었고 

죽은 느릅나무 가지가 드리워져 있었지,

그런데 그 가지 아래는

민달팽이, 두더지, 꿩, 각다귀, 거미, 나방, 벌새, 땅개, 나비처럼

찰나의, 순간적인 생명체들로 빽빽하게 뒤덮인 초록이더라고.

인생이란 

모든 걸 이해하기에는 너무나 짧아.

온갖 생명들의 기저를 이루는 

거대한 지표면부터 시작해서, 모든 것이 말이야.

 

 

 

아무도 우리가 우리 삶을 연구해야 한다고 말해주지 않았어.

자연사를 연구하듯이, 우리 삶을 연구하며 살라고 말하지 않았지.

우리가 삶을 시작을 할 때는 마치 음악을 배울 때처럼

쉬운 연습부터 시작을 해서

서서히 어려운 단계로 접어들고,

연습을 통해 힘과 정확성을 가지고 하나가 되어

대담하게 초월성으로 뛰어오르고,

거칠게 울부짖는 아르페지오를 무너뜨리거나

푸가 악장 전체를 망쳐버릴 기회를 잡아야 하는 거지만

사실상 우린 그렇게 살지 못하거든. 그 대신 우린 한꺼번에 

모든 걸 떠맡지,

제대로 읽고 해답을 정할 시간을 갖기도 전에

어려움의 한가운데에서부터 시작하도록 강요받지,

태어나면서부터 이미 사려 깊은 사람이기라도 한 것처럼.

 

 

 

기껏해야 우리는 고작 몇 개월 동안,

한 여자가 자기 가슴에 기댄 아이에게 노래부르는

그 단순한 선율에

단순한 귀기울임을 허락했을 뿐이었어.

모든 것들이 너무나도 순식간이고

너무나도 갑작스러워서

가슴이 찢어질 듯한 아픔이야,

우리가 행복할 때든 절망할 때든 관계 없이 들려오던

어머니의 심장 소리로부터 멀리 떨어지는 일이란,

낮은 그 메아리의 상실이란.

 

 

 

모든 것이 우리의 너머에 있는 것처럼 보이지.

우린 준비가 안 됐는데

벌거벗은 채 말다툼에 붙잡혀와서는,

악보를 처음 봤는데도 제대로 노래를 부르려고 애쓰면서,

심지어 읽을 줄도 모르는 대위법을

온 마음을 다해 배우려고 하는 거지.

이게 바로 우리가 태어난 바로 그 자리야.

우리는 거장이나 어린 신동이 아님에도

이 왕국에 기적이란 것이 없음에도

그저 반쯤은 장님으로, 고집불통처럼,

심지어 모든 텍스트가 그걸 다르게 묘사할지라도

'우리 자신'이라는 그 어조와 음색을 고수하려고 애를 쓰지.

 

 

 

그리고 우린 음악가 리스트(Liszt)처럼

속도와 영리함으로 세상에 경쟁적으로 대항하는 그런 음악가도 아냐.

(언젠가 79세의 피아니스트가 말하길

거장을 만드는 건 "경쟁심"이라고 하더군)

삶을 더 많이 살수록

나는 연극성이라는 것을, 공연을 함으로써 조성된 억지스런 매력을 불신하게 되네.

삶을 더 많이 살수록 

우리가 분열된 삶으로부터 회복되고 있다는 진실 곁에서

연극성이라는 것의 빈곤함을 알게 돼.

앉아서 보고 듣는 어머니,

어둠속에서 움직이는 눈동자였던 아이를 가진 그 어머니란 존재는 

그녀의 육신으로써 리허설을 하는 중이었다고.

그녀의 핏줄로부터 들으려 하면서,

아마도 몇 마디 가사, 몇 마디 코드, 무대로부터, 

그녀에게 감동을 준 음악을,

오직 그녀만이 들을 수 있는 이야기를 들으려 하면서.

 

 

 

그러나 이런 시간이 닥쳐오는 거야 - 우리에게 닥쳐오는 일들 중에는 

우리가 스스로를 더 심각하게 받아들여야만 하는 때가 있지,

그렇지 못하면 죽어야만 하는 때가 말이야.

우리를 주문에서 풀어줘야 할 때가, 

우리가 생각없이 받아들인 리듬으로부터 물러나야만 할 때가, 

우리가 자기자신을 단념하고 침묵을 하거나

보다 더 철저한 경청에 스스로를 바쳐야만 할 때가,

탯줄을 휘감고 있는 웅변과 공식, 합창과 비탄, 정적을 싹 씻어냄으로써 

우리 자신을 해방시켜야 할 때가 있는 거야.

우리는 탯줄을 잘라내고서

자유낙하를 하면서 우리를 찾아가지, 

마치 우리의 진정한 집이

차원 없는 고독이기라도 한 것처럼,

대성운의 균열 속이기라도 한 것처럼 말이야.

새로운 언어를 말하며 살아남았던 사람들 그 누구도 

다음의 규칙을 어기지 않았어 : 

그녀를 오래된 땅에 붙박이게 하던 오래된 힘을 잘라낸다는 규칙이지.

그녀를 오래된 땅에 붙박이게 하던 것이란

완전한 고독의 경기장이었지.

그녀 자신과 그녀의 창조물을 동시에 흩뜨리게 하며, 무중력인 것처럼 만들고, 

그 어떤 메아리도 없는, 메아리조차 나오지 못하는

울음의 경기장이랄까.

하지만 사실 우리는 언제나 이러한,

정처없고, 훼손되어진 상태였어.

그 사실을 알아차리는 것이 차이점을 만들어내는 상태 말이지.

탄생이라는 건 말야,

우리로부터 탄생권을 빼앗아가버렸어.

한 어머니에게서 우리를 떼내어 버리고,

모성애라는 것으로부터,

우리 자신으로부터 그렇게도 일찍 우리를 떼어내 버린 거야.

모기떼처럼 우리의 귀에서 잉잉거리는 주제에

'근원'에 관한 것은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는,

우리가 알아야만 하는 건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는,

우리가 무엇이었는지 기억해내게 할 무엇도 말해주지 않는 그놈의 완전한 화음으로부터

탄생은 우리를 떼어내 버린 거야.

 

 

단지 자연스럽지 않을 따름이지.

어머니에게서 느끼는 향수병, 우리 자신에게서 느끼는 향수병,

어머니의 팔과 머리가 벽에 드리우던 그림자에 대한 향수병,

그녀의 두툼하거나 가느다란 허벅지에 우리가 누워서,

살이 살을 밀어내고,

사랑의 얼굴로 꾸준히 지켜보던 눈동자,

그런 극심한 기쁨에 대한 향수병이란.

어머니의 젖 내음, 어머니의 땀냄새, 어머니가 없을 때 느끼던 공포감,

누구나 가장 위험하다고 말한 요소들,

어머니의 품 속에서 숨을 헐떡이며

어머니 뱃속에서 마구 뒤흔들던

그 모두가 이런 배고픔 속에 녹아들었어.

비록 뒤돌아 패배하고, 다시 오도가도 못하게 된 것들일지라도 녹아들었어.

갑작스럽게 솟구치는 생각들 속에서

작고, 둥글고, 위험에 처한 

새로운 세상이라는 알주머니처럼 떨고 있음을

이해하기 위해서 그 모두가 녹아들었어.

이것이야말로 어머니가 나라는 증거,

이것이야말로 

어머니가 나를 사랑해주었듯이 유일하게

나 스스로를 사랑하는 방식.

 

 

나 자신에 대한 향수병, 어머니에 대한 향수병 -

폭염이 찾아온 이후에야

세상의 청아한 노래들이 모습을 드러내네.

구름, 나뭇가지, 벽, 곤충, 빛의 영혼이 나타나네.

욕망이라는 지하 납골당이 그 자신을 드러내는 듯한

그런 향수병이지.

지하 납골당 속 욕망이란 다음과 같은 거지, 

"나는 사랑하는 사람이요 사랑받는 자,

집이요 또한 방랑자,

땔나무를 쪼개는 여인이자 폭풍 속에서 노크 하는 여인,

그러니까 두 명의 여인,

눈과 눈을 바라보며

서로의 영혼 속에서 끝이 없는 욕망을 헤아리는 여인들."

 

여기서부터 시작되는

새로운 시가 있다네.

 

 

 

비전이란 그런 삶들로부터 일어나기 시작하지,

한 여인이 조용히 걷듯이,

어떤 방에서 벌어진 말싸움과 전문용어들로부터 벗어나

부엌으로 가서 앉아서

무릎을 구부리고

실이며 칼리코, 벨벳 조각들을

작은 무지개빛깔 조개와 함께

등불 아래 닦아놓은 선반에다 무심코 늘어놓기 시작하듯이

그렇게 시작하지.

아주 멀리 떨어진 곳으로부터 들여온 면과 울,

가장 가까운 초원에서 채집한 유액 식물의 타래들, 

가내 수공업으로 지은 실크,

가장 진푸르고 결 고운 것들만 골라낸 페투니아 꽃잎들,

어두운 갈색의 해초들과 함께 말이지.

고양이는 야옹거리고, 

핀치 새의 노란 깃털 옆에 있는

종이로 만든 거미집의 나선형도 함께.

 

그러한 곡을 만들어내는 일이란

영원과는 하등 관련이 없고,

위대함이나 영광을 위한 노력과도 관련이 없어.

오직 어떤 마음의 사색과 

그녀의 육신과 함께 하는 한 사람,

밝음에 대적하여 어둠을 조용히 밀어주는 

경험이 많은 손가락들과 관계가 있지.

험한 것에 대적하는 실크 천과 관계가 있지.

지배하고자 하는 의지는 전혀 없이 

삶이라는 교리를 함께 만들어가며,

그녀 스스로 별견한 다함 없는 형태의 

다양한 생명체들을 아껴주는 일과 관계가 있지.

이제는 피부에는 위험한, 깨어진 유리 조각들의 파편으로 만들어진 등불이 되어서,

이제는 욱신거리는 손가락을 감싼 충분하고 부드러운 잎사귀가 되어서,

상처를 진정시키는 일과 관계가 있지.

그리고 이제는 그 튼튼한 기반이 되는 일과 관계가 있지,

모든 것들의 아래에서 미래에 자라날 것들의

지표면과

관계가 있단다. 

 

 

Transcendental Etudes -  Adrienne Rich

 

This August evening I’ve been driving

over backroads fringed with queen anne’s lace

my car startling young deer in meadows—one

gave a hoarse intake of her breath and all

four fawns sprang after her

into the dark maples.

 

Three months from today they’ll be fair game

for the hit-and-run hunters, glorying

in a weekend’s destructive power,

triggers fingered by drunken gunmen, sometimes

so inept as to leave the shattered animal

stunned in her blood. But then evening deep in summer

the deer are still alive and free,

nibbling apples from early-laden boughs

so weighed, so englobed

with already yellowing fruit.

they seem eternal, Hesperidean

in the clear-tuned, cricket-throbbing air.

 

Later I stood in the dooryard

my nerves singing the immense

fragility of all this sweetness,

this green world already sentimentalized, photographed,

advertised to death. Yet, it persists

stubbornly beyond the fake Vermont

of antique barnboards glazed into discotheques,

artificial snow, the sick Vermont of children

conceived in apathy grown to winters

of rotgut violence,

poverty gnashing its teeth like a blind cat at their lives.

Still, it persists. Turning off into a dirt road

from the raw cuts bulldozed through a quiet village

for the tourist run to Canada,

I’ve sat on a stone fence above a great-soft, sloping field

of musing helfers, a farmstead

slanting its planes calmly in the calm light,

a dead elm raising bleached arms

above a green so dense with life,

minute, momentary life—slugs, moles, pheasants, gnats,

spiders, moths, hummingbirds, groundhogs, butterflies

a lifetime is too narrow

to understand it all, beginning with the huge

rockshelves that underlie all life.

 

No one ever told us we had to study our lives,

make of our lives a study, as if learning natural history

music, that we should begin

with the simple exercises first

and slowly go on trying

the hard ones, practicing till strength

and accuracy became one with the daring

to leap into transcendence, take the chance

of breaking down the wild arpeggio

or faulting the full sentence of the fugue.

And in fact we can’t live like that: we take on

everything at once before we’ve even begun

to read or mark time, we’re forced to begin

in the midst of the hard movement,

the one already sounding as we are born.

 

At most we’re allowed a few months

of simply listening to the simple

line of a woman’s voice singing a child

against her heart. Everything else is too soon,

too sudden, the wrenching-apart, that woman’s heartbeat

heard ever after from a distance

the loss of that ground-note echoing

whenever we are happy, or in despair.

 

Everything else seems beyond us,

we aren’t ready for it, nothing that was said

is true for us, caught naked in the argument,

the counterpoint, trying to sightread

what our fingers can’t keep up with, learn by heart

what we can’t even read. And yet

it is this we were born to. We aren’t virtuosi

or child prdigies, there are no prodigies

in this realm, only a half-blind, stubborn

cleaving to the timbre, the tones of what we are,

even when all the texts describe it differently.

 

And we’re not performers, like Liszt, competing

against the world for speed and brilliance

(the 79-year-old pianist said, when I asked her

What makes a virtuoso?—Competitiveness.)

The longer I live the more I mistrust

theatricality, the false glamour cast

by performance, the more I know its poverty beside

the truths we are salvaging from

the splitting-open of our lives

The woman who sits watching, listening,

eyes moving in the darkness

is rehearsing in her body, hearing-out in her blood

a score touched off in her perhaps

by some words, a few chords, from the stage,

a tale only she can tell.

 

But there come times—perhaps this is one of them

when we have to take ourselves more seriously or die;

we when have to pull back from the incantations,

rhythms we’ve moved to thoughtlessly,

and disenthrall ourselves, bestow

ourselves to silence, or a severer listening, cleansed

of oratory, formulas, choruses, laments, static

crowning the wires. We cut the wires,

find ourselves in free-fall, as if

our true home were the undimensional

solitudes, the rift

in the Great Nebula.

No one who survives to speak

new language, has avoided this:

the cutting-away of an old force that held her

rooted to an old ground

the pitch of utter loneliness

where she herself and all creation

seem equally dispersed, weightless, her being a cry

to which no echo comes or can ever come.

But in fact we were always like this,

rootless, dismembered: knowing it makes the difference.

Birth stripped our birthright from us,

tore us from a woman, from women, from ourselves

so early on

and the whole chorus throbbing at our ears

like midges, told us nothing, nothing

of origins, nothing we needed

to know, nothing that could re-member us.

 

Only: that it is unnatural,

the homesickness for a woman, for ourselves,

for that acute joy at the shadow her head and arms

cast on a wall, her heavy or slender

thighs on which we lay, flesh against flesh,

eyes steady on the face of love; smell of her milk, her sweat,

terror of her disappearance, all fused in this hunger

for the element they have called most dangerous, to be

lifted breathtaken on her breast, to rock within her—even if beaten back, stranded again, to apprehend

in a sudden brine-clear though

trembling like the tiny, orbed, endangered

egg-sac of a new world:

This is what she was to me, and this

is how I can love myself

as only a woman can love me.

 

 

Homesick for myself, for her—as, later the heatwave

breaks, the clear tones of the world

manifest: cloud, bough, wall, insect, the very soul of light,

homesick as the fluted vault of desire

articulates itself: I am the lover and the loved,

home and wanderer, she who splits

firewood and she who knocks, a strange

in the storm, two women, eye to eye

measuring each other’s spirits each others’

limitless desire,

 

         a whole new poetry beginning here.

 

 

Vision begins to happen in such a life

as if a woman quietly walked away

from the argument and jargon in a room

and sitting down in the kitchen, began turning in her lap

bits of yarn, calico and velvet scraps,

laying them out absently on the scrubbed boards

in the lamplight, with small rainbow- colored shells

sent in cotton-wool from somewhere far away

and skeins of milkweed from the nearest meadow

original domestic silk, the finest findings

and the darkblue petal of the petunia,

and the dry darkbrown face of seaweed;

not forgotten either, the shed silver

whisker of the cat,

the spiral of paper-wasp-nest curling

beside the finch’s yellow feather.

Such a composition has nothing to do with eternity,

the striving for greatness, brilliance

only with the musing of a mind

one with her body, experienced fingers quietly pushing

dark against bright; silk against roughness,

putting the tenets of a life together

with no mere will to mastery,

only care for the many-lived, unending

forms in which she finds herself,

becoming now the sherd of broken glass

slicing light in a corner, dangerous

to flesh, now the plentiful, soft leaf

that wrapped round the throbbing finger, soothes the wound;

and now the stone foundation, rockshelf further

forming underneath everything that gro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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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월적 기교를 위한 연습곡 : 헝가리의 작곡가 프란츠 리스트가 만든 12개의 피아노 연습곡. 일본어를 직역하여 "초절기교 연습곡"이라 부른다. 

https://www.youtube.com/watch?v=1O4h0AapdbQ (Liszt: Transcendental Etudes S.139 (by Clidat, Ovchinnikov, Kissin)

■ 헤리페데스의 정원 : 그리스 신화에서, 요정들이 지키는 황금사과 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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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를 처음으로 알게 된 것은

셰릴 스트레이드의 "와일드"라는 책을 읽었을 때였다.

셰릴 스트레이드는 퍼시픽 트레일을 걸으며 좋아하는 책의 문구들을 되뇌곤 하는데 

에이드리언 리치 또한 그 문구들 중 하나로 등장했던 인물이다.

그래서 이미 번역된 "공통 언어를 향한 꿈" 시집을 빌려 봤는데,

이 시가 완전 이상하게 번역되었다고 느꼈다.

그래서 직접 번역해보기로 작정한 다음에 바로 난관에 부딪혔다.

마치 "초절기교 연습곡"처럼 배배 꼬인 문장들에 애를 먹었고

그때마다 포기했으며

그래서 번역하는 데 몇 년이 걸렸으나 결과는... ㅠㅠ

진짜 아름다운 시였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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