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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서평] 야생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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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 맥캔들리스의 2년 동안의 동선)

 

북클러버 독서모임으로 친구와 함께 "콜드스프링"을 결성했다. 우리는 비록 두 명이지만, 번갈아가면서 발제문을 준비하고, 한 달에 한 번 정도 읽을 책을 합의 하에 선정하며, 완독한 뒤에는 디스코드를 통하여 1시간 내외 토론을 하기로 하는 등 나름대로의 규칙을 세밀하게 정하였다. 자칫 겉핥기식의 독서나 내보이기식의 모임이 되지 않으려면 그럴 필요가 있었다.

첫 모임 책으로는 내 요청으로 <야생 속으로(Into the Wild)>를 골랐다. 바로 크리스 맥캔들리스(Chris McCandless, 1968.2.12.~1992.8.??)의 알래스카에서의 죽음을 다룬 논픽션이다.

작가 존 크라카워(Jon Krakauer, 1954~)는 주인공이 사망한 4년 뒤 1996년에 이 책을 내는데, 2007년에 동명의 영화로도 제작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2010년에 책이 번역되었다. 절판이 되었다가 2019년에 출판사를 달리하여 복간되었다.

오래 전 나는 김경주 시인에게서 영화 인투 더 와일드를 추천 받았는데, 그 영화를 재미있게 보았으므로 책에도 자연히 관심을 두고 있었다. 복간이 되었는지 모르고 있다가 올해 초에야 알게 되어 비로소 책을 구입하게 되었다.

존 크라카워는 미국의 산악가이자 저널리스트이다. 1996년 크라카워는 에베레스트 산을 올랐고, 폭풍우가 그와 함께 정상에 오른 5명의 팀원 중 4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그가 아웃사이더 잡지에 쓴 재난에 대한 분석은 내셔널 매거진 상을 받았다. 또 이를 다룬 그의 작품 희박한 공기속으로(Into Thin Air)는 영화 에베레스트의 원작으로, 1998년 퓰리처상 최종 후보에 올랐다. 이외에도 모르몬교에 대한 폭로를 다루는가 하면 가장 최근작 Missoula: Rape and the Justice System in a College Town (미쏘울라: 대학가의 강간과 사법제도, 2015) 를 출간했는데 이는 캠퍼스 내 강간이 전염병 수준으로 증가하고 있는 사태를 고발하고, 미쏘울라 지역에서 여성들이 강간당한 사건을 냉정하게 추적한 기록이다.

  

(레고로 재구성된 142번 버스)

 

이 책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이 간단히 축약할 수 있겠다. “1990년 6월, 크리스 맥캔들리스는 자신의 이름을 버리고 알렉산더 슈퍼트램프라는 이름으로 여행을 떠난다. 여동생과 부모님에게 소식을 전하지 않은 채로 그는 2년간 각지를 떠돌며 목적지인 알래스카에 도착하지만 1992년 8월, 버려진 버스 안에서 죽음을 맞았다.”

다만 분량이 늘어난 것은 단순히 크리스 뿐만이 아니라 야생에 집착하는 젊은이들(저자 자신을 포함하여)을 심도 있게 들여다보고, 크리스의 죽음이 정말로 어리석은 것에 불과했는지에 대해서 끈질기게 추적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어린 시절의 크리스)

 

크리스는 명석하지만 고독하며, 정신적으로 결백을 추구하는 성향을 지녔다. 사회 생활도 어느 정도 경험했으며 본인이 원하기만 하면 얼마든지 문명에 적응해 잘 살아갈 자신도 있었으리라 추정된다. 그런 그에게는 방황의 시절이 필요했을 것이다. 역시나 그는 알래스카에 깊이 매료되었고, 스스로의 생존 능력을 시험하면서 삶의 의미를 느끼고 싶어했다. 그러나 그의 떠남은 돌아옴을 위한 것이었으며, 진짜 죽기 위한 것은 아니었으리라 짐작된다.

 

(사냥에 성공한 크리스)

 

나는 청춘에서 흔히 발견되는 이러한 맹목을 세 개의 축으로 설명하고 싶다. 그 축은 죽음, 미침, 떠남이다. 다시 말해, 인간은 죽거나 미치지 않기 위해 떠난다. 인간은 미치거나 떠나지 않기 위해 죽는다. 인간은 떠나거나 죽지 않기 위해 미친다. 크리스는 내겐 명백히 가장 처음 문장을 증거하는 인물로 보인다. 그는 문명 속으로 들어가기 위해 우선 야생 속으로 들어가야만 했다. 왜 인간들이 오랜 역사를 거쳐 문명을 형성하여 그 속에서 살게 되었는지를 본인이 직접 체득하기 전까지는, 자연을 추구할 수밖에 없었으리란 게 내 추정이다.

크리스는 비록 어리고 어리석었으나, 철저히 스스로의 선택에 의해서 길을 떠났고 그 길에서 나름대로의 결실을 얻었다. 죽음은 예기치 못한 것이었으나, 깨달음은 있었다. “행복은 나눌 때 진정한 가치가 있다.”고 책 한 귀퉁에 휘갈긴 메모에서 그 깨달음이 어떠한 것이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절대 고독의 끝에서, 인간은 역시 사회적인 동물일 수밖에 없으며, 사랑이 왜 탄생했는지도 이해했으리라 믿는다. Rest In Peace.

 

(죽기 며칠 전의 크리스)

 

PS. 크리스의 성향을 생각하다가 문득 악동뮤지션 이찬혁의 노래가 떠올랐다. 하나는 벤치, 나머지 하나는 맞짱이란 곡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PTYo1IdhuBA

AKMU - 'BENCH (with Zion.T)'

 

가끔은 벤치 따위에 누워

하루만 잠들었다가 깨면

모든 것이 내게 사라진 채로

거리를 걷고 싶어

제일 비싸고 편한 슈트를 사 입고

천장 없는 내 집을 누비며

나무와 꽃이 내 친구 중 전부라면

난 더 이상 상처받지 않을 거야 (oh)

Baby 가여운 이 세상이

Baby 죽어버린 사랑이

나 때문이라고 하는 것처럼

손가락질하는 사람들을 위해

노래해

난 평활 원하기 때문에

사랑하고 싶기 때문에

이른 아침 벤치 위에서 깨어나

모든 걸 잊고 있어

Oh

제일 빳빳한 가죽

재킷을 사 입고

건들 건들 거리는 춤추며

철새처럼 이별하는 법을 안다면

난 더 이상 후회하지 않을 거야

Baby 가여운 이 세상이 (세상이)

Baby 죽어버린 사랑이 (oh)

나 때문이라고 하는 것처럼

손가락질하는 사람들을 위해

노래해

난 평활 원하기 때문에

사랑하고 싶기 때문에

이른 아침 벤치 위에서 깨어나

모든 걸 잊고 있어 (oh yeah, oh)

 

 

 

 

https://www.youtube.com/watch?v=pKE7NJGxyDI

AKMU (악뮤) - 맞짱 (with 잔나비 최정훈)

 

모든 사람에게 사랑받고 싶던 모든 사람과 좋은 친구가 되고 싶었던 5학년 꼬마는

어쩔 수 없던 첫 맞짱으로 엄마의 속상함을 사고

아들 왜 맞기만 하고 때리질 못했어

엄마 난 친한 친구와 싸운 게 너무 슬펐어요

입에 멍들고 반에서 구경 온 것보다 아파요

설거지하시던 손을 닦아내고 그 친구 위해 기도하자 두 손을 모으렴

키 작은 꼬마는 두 눈을 감고 품에 안긴 채 용서와 사랑을 배우고

아들 이다음에 자라면 뭐가 되고 싶어

엄마 난 엄마를 행복하게 하고 싶어요 우릴 위협하고 슬프게 하는 것으로부터

나는 이제 모두에게 사랑받을 이유를

누군가의 칭찬과 관심을 구걸할 이유를 모르겠어요

날 사랑해 주는 사람들과만 행복하게 살래요

 

 

본문 속 인상적인 대목

 

“알렉스는 한눈에 봐도 똑똑한 청년이었어요. 책을 많이 읽었더군요. 어려운 단어도 많이 썼죠. 내가 볼 때 그가 힘들게 사는 건 생각이 너무 많아서이기도 한 것 같아요. 이따금씩 세상을 이해하려고, 사람들이 툭하면 서로 티격태격하는 이유를 알아내려고 무진 애를 썼어요. 그런 생각에 너무 깊이 빠지는 건 안 좋다는 걸 몇 번 일러주려 했지만, 알렉스는 그런 문제에 한번 빠지면 좀처럼 헤어나질 못했어요. 정답을 알아내야만 다음 문제로 넘어갔죠.” - 웨인 웨스터버그

 

“좋은 사람이었어. 아주 좋은 젊은이였지. 하지만 주변에 사람들이 많이 있는 걸 달가워하지 않았어. 까다로웠어. 좋은 사람이긴 한데, 내가 볼 때 콤플렉스가 많았어. 내 말이 무슨 뜻인지 알지? 그 알래스카 사람인 잭 런던의 책들을 즐겨 읽더군. 절대 말을 많이 하지 않았지. 기분 변화가 심했고 방해받는 걸 싫어했어. 뭔가를 찾는 아이 같아 보이기도 했어. 그게 뭔지도 모르면서 말이야. 나도 한때는 그랬는데, 그러다 내가 찾는 게 뭔지 깨달았지. 그건 바로 돈이었어! 하! 하하. 하아! 하지만 내가 알래스카 얘기하는 건 좋아했지. 그래, 그 젊은이는 알래스카에 갈 거라고 했어. 어쩌면 자기가 찾고 있던 걸 찾기 위해서일지도 모르지. 어쨌든 좋은 사람 같았어. 콤플렉스가 많기도 했지만 말이야. 콤플렉스가 심했어. 크리스마스 무렵에 떠나면서 여기에 있게 해준 보답이라면서 50달러와 담배 한 상자를 주더군. 아주 예의바른 청년이라고 생각했지.” - 노인 찰리

 

그의 일기(부자연스럽고 자의식 가득한 3인칭 시점으로 기록했다)가 전반적으로 멜로드라마 분위기를 띠긴 하지만,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이 기록에서 맥캔들리스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전하고 있다. 그는 진실을 말하는 것을 하나의 신조로 엄숙하게 받아들였다.

 

1988년, 부모에 대한 크리스의 분노는 점점 커져 급기야는 세상 전체의 부당함에 대한 분노가 되었다. 빌리는 그해 여름을 이렇게 기억한다. “크리스는 에모리에 있는 부잣집 아이들 모두를 못마땅해 했어요.” 크리스 맥캔들리스는 인종차별주의, 세계의 기아, 불평등한 부의 분배 같은 절박한 사회문제들을 다루는 수업을 점점 더 많이 들었다. 하지만 돈과 과시적 소비에 반감을 보이긴 했어도 크리스의 정치 성향이 진보적이라고 하기는 힘들었다. 사실 민주당의 정책을 조롱하기를 즐겼고 로널드 레이건을 드러내놓고 찬양했다. 에모리에서는 대학 공화당 클럽을 공동 설립하기까지 했다. 얼핏 모순되어 보이는 정치적 입장은 《시민 불복종》에 나온 소로의 말로 가장 잘 요약될 듯하다. “나는 다음의 주장을 진심으로 받아들인다. ‘가장 적게 지배하는 정부야말로 최고의 정부다.”

 

누구나 젊은 시절에는 자신에게 원하는 것을 가질 자격이 있다고 믿기 쉽고, 뭔가를 간절히 원할 때 그것을 갖는 것은 신이 주신 권리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해 4월에 크리스 맥캔들리스처럼 알래스카에 가기로 결심했을 때, 나는 열정을 통찰력이라 착각하면서 분명치 않고 결함투성이인 논리에 따라 행동하는 미숙한 젊은이였다. 데블스 섬 등반으로 내 인생의 모든 잘못을 바로잡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당연히 달라진 건 거의 없었다. 그렇지만 산이 내 모든 꿈을 담는 그릇이 되지는 못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나는 살아남았으므로 이런 얘기를 할 수 있는 것이다.

 

무의미하고 지루한 인간의 언어에서, 그 모든 고상한 말투에서 도망쳐 말이 그토록 서툰 자연 속에서 피난처를 찾기를, 아니면 오래고 힘든 노동, 깊은 잠, 진실한 음악, 말없이 감정으로 이루어지는 인간의 이해라는 모든 침묵 속에서 피난처를 찾기를 때때로 우리는 얼마나 바라는가! (닥터 지바고 중에서) 이 구절에는 검은 잉크로 별표를 하고 괄호를 했으며 “자연 속에서 피난처”에는 동그라미를 쳐놓았다. 그 옆에는 이렇게 적어놓았다. “행복은 나눌 때 진정한 가치가 있다.”

 

〈소리 없는 불〉 마지막 부분에서 해밀턴은 이렇게 말했다. ”크리스토퍼 맥캔들리스가 알래스카 야생에서 굶어죽은 것이 사실이긴 하지만, 이것은 그가 중독되었기 때문이다. 이 독 때문에 맥캔들리스는 돌아다니며 사냥이나 채집을 할 수 없을 만큼 약해졌고, 마지막에 가서는 ‘극도로 쇠약해졌으며’, ‘걷지도 못하는 상태가 되었고’, ‘그저 서 있는 것조차 몹시 힘들 정도’가 되었다. 따라서 그는 엄밀한 의미로 굶어죽은 것은 아니었다. (……) 하지만 그를 죽게 한 것은 오만함도 아니었다. 그것은 그저 무지였다. (……) 그리고 그 무지는 용서받아야 하는데, 그를 죽음에 이르게 한 사실들은 모든 사람, 비전문가뿐만 아니라 과학자들도 그야말로 몇십 년 동안 모르고 있던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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