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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서평] 중독에 빠진 뇌 과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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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문학 외에 뇌과학 서적 위주로 책을 읽어왔다. 중독 역시 매혹적인 테마였다. <도파민형 인간>, <이토록 뜻밖의 뇌과학>, <우울할 땐 뇌과학> 같은 서적을 읽어오면서 나름대로 내린 결론은, 뇌 역시 신체의 장기 중 하나라는 것. 그러나 그 영향력은 매우 지배적이라는 것. 그 이유는 신체를 통제하기 위해서 발달한 장기가 뇌이기 때문이란 것이었다. 하지만 궁금증은 여전했다. 왜 어떤 사람들은 중독되는지. 또 어떻게 그 중독에서 벗어날 수 있는지. 그런 것들을 언젠가 누군가가 밝혀주었으면 싶었다.
이 책은 제목부터가 흥미를 끌었다. 중독에 빠진 뇌 과학자라니? 바로 내 오랜 의문에 대한 해답을 제목으로 제시해준 것처럼 느껴졌다. 저자 자신이 중독자였음을 고백하는 책의 첫 도입부도 자못 충격적이었다. 이런 마약 중독자가 어떻게 뇌 과학자가 되었을까? 의문은 다음의 설명으로 간단히 풀렸다.

...결국 치료센터에서 시작된 1년간의 극적인 변화를 포함하여 대학을 졸업하는 데 총 7년이 걸렸으며, 그 뒤로도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기까지 7년이 더 소요되었다. - p.7

저자 주디스 그리셀은 결국 14년이나 분투를 해서, 겨우 중독자에서 중독을 관찰하는 연구자의 입장으로 위치를 바꿀 수 있었던 셈이었다. 그런데 그녀는 어쩌다 중독자가 되었을까.

 



미국 국립 알코올 남용 및 중독 연구소 소장 조지 쿱에 의하면, 알코올중독에 빠지게 되는 길은 두 가지가 있다. 중독자로 태어나거나 많이 마시거나. 쿱 박사는 말장난을 하려는 것이 아니며, 누구나 이 둘 중 한 가지에 해당할 수 있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이 질병이 어째서 이렇게나 흔한지도 설명이 가능하다. - p.15

중독에 빠지는 요인은 매우 복합적이지만 그 중에서 유전적인 요인이 치명적이라는 점을 알 수 있었다. 타고난 기질이라는 것이 어느 정도는 존재할 수 밖에 없고, 그런 기질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사는 동안 내내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저자인 주디스 그리셀 또한, 중독에서 벗어난 지금까지도 마음 속엔 갈망이 숨어있다는 사실을 함께 고백한다. 중독에 빠지는 요인에 대해서는 10장, 나는 어째서 중독에 빠진 걸까? 에 대해서 상세하게 기술되고 있다.

 



사실상 내가 아는 모든 이가 화학물질을 사용했다. 왜 이들은 약에 잡아먹히지 않은 것일까? 가령 9학년 때 나와 함께 학교에서 쫓겨났던 친구는 내가 치료센터에 다니는 동안 직업적으로 승승장구하고 행복한 가정을 꾸렸다. 분명 그 친구나 나나 같은 길에서 출발했는데 나만 도랑에 처박히고 그 친구는 탄탄대로를 유유히 미끄러져 나아가는 것은 말도 안됐다. - p.287

저자는 왜 하필 내가 중독자가 되었을까, 를 돌이키며 자신이 느낀 억울함을 고백한다. 그리고 30년간 연구한 결과, 중독의 원인에는 4가지가 있다는 결론을 얻었다고 한다. 우선은 유전적으로 물려받은 생물학적 기질, 어마어마한 양의 약물에 노출된 경험, 특히 청소년기에 약물을 접촉한 경험, 그리고 약물 중독을 촉발하는 환경적인 요인이 그것이라고 한다.

제일 소름끼쳤던 건, "어마어마한 양의 약물에 노출된 경험" 이라는 요인이었다. 그러니까 유전이나 환경 요인이 없더라도, 어떤 약물이건 노출 정도가 일정 수준에 다다르면 내성, 의존, 갈망이라는 중독의 3대 특징이 나타나게 된다는 말이지 않은가? 즉, 약물을 적당히 사용하거나, 그럴 자신이 없다면 아예 근처에도 안 가는 것이 중독을 막는 거의 유일한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독자인 나의 경우를 돌이켜보면, 술 중독까지는 아니지만 중독 문턱을 막 넘어서려는 단계에 최근까지도 머물러 있었던 것 같다. 여름날 퇴근길의 맥주 한 캔이 두 캔이 되고, 알콜 농도가 더 높은 맥주를 선택하게 되고, 소주를 비롯해 와인 등 다양한 주종으로 입맛도 넓혀가고... 이런 식으로 누구나 술 한 잔씩은 하고 살지 않나? 하는 생각에 점점 술을 적당히 마시지 않게 되었다. 결국 와인은 사면 한 병을 무조건 비울 정도가 되고, 체중 앞자릿수가 바뀌고, 담낭염에 걸려 응급실 행을 맛보고서야 비로소 정신이 들었다.
'이 책에 따르면, 술을 적당히 마시거나, 그럴 자신이 없다면 근처에도 안 가는 것이 앞으로 삶에서 알코올중독으로 가지 않는 유일한 방법이겠지.' 
서글프고 쓰디쓴 자각이긴 하지만 역시 명심하고 살아야 할 깨달음인 것 같다. 내성, 의존, 갈망 상태에서 거리를 돌아다니는 거렁뱅이 꼴이 되지 않으려면 말이다. 그런 사람들이라고 중독자가 되고 싶었던 건 아닐 테니까.

그런데 "유전적으로 물려받은 생물학적 기질"은 정말 어쩔 수 없는 걸까? 유전적인 위험성은 과학 기술로 얼마나 커버할 수 있을까?
저자는 불행히도 여전히 이 위험성의 뚜렷한 원인을 찾기 힘들며, 따라서 취약성을 막는 것도 아직까지는 불가하다고 밝힌다. 유전자에서는 단 하나의 염기만 달라져도 결과물의 구조에 변화가 생기고, 당연히 그 기능도 변하므로 사소한 변이를 찾아내는 게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또한 유전적인 영향은 맥락의존적이고 믿을 수 없을 만큼 복합적이기 때문에 불가능하다고 한다. 그러나 다행인 건 여전히 연구자들의 추적은 계속되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청소년기에 약물을 접촉한 경험" 은 관문 효과라고 부른다. 청소년기에 대마를 비롯한 물질에 노출되었을 때 약물을 찾는 행동이 증가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변화는 태아기에 약물에 노출되었을 때와 실질적으로 동일한 이유로 발생한다고 한다. 오, 이러한 내용도 충격적이었다. 발달 시기의 뇌가 모든 걸 쉽게 습득한다는 점에서, 약물 경험 역시도 습득해버리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신경 발달과정에서 성인이라고 볼 수 있는 연령인 25세 이전의 약물 경험은, 그 이후 나이에 접한 것보다 훨씬 크고 오래 지속된다고 한다.
그러니 청소년기나 갓 성인된 친구들에게 흡연이나 술마시기를 자제하라고 권할 때, 단순히 하지 말라고만 하는 것보다, 이러한 정확한 이유를 제시하면서 설명해주는 건 어떨까? 그러면 웬만한 아이들은 자발적으로 손을 대지 않을 것 같다. 물론 자기 자신을 과신하는 청춘의 날들엔, 이런 말들이 와닿기 힘들지도 모르겠지만.

 


저자는 결국 "중독에 빠지는 원인은 중독자만큼이나 다양하다"고 결론을 내린다. 이토록 복잡한 세상에서, 개인의 중독을 측정할만한 객관적인 도구를 찾아낼 수는 없을테니까. 그럼에도 저자는 우리가 중독을 제대로 이해해야 하고, 잠재적인 중독자의 입장에서 서로를 도와야 한다고 말한다.

잘못된 약물사용은 소외에서 기인하여, 소외로 인해 심화되며, 끝내 다시 소외를 야기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 p.344

결국은, 외롭지 않는 것 - 외롭게 하지 않는 것. 서로에게 서로가 되어주는 일의 소중함으로 이야기의 방점이 찍히다니.
중독마저도 어쩌면 진짜 원인은 외로움일지 모른다. 그러니 또 한 번 결심하게 된다. 올해도 외롭지 말자고. 외롭게 하지 말자고. 나 자신을 위해서, 그리고 주변 사람들을 위해서 말이다.



※ 네이버 카페 컬쳐블룸 https://cafe.naver.com/culturebloom 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작성한 서평입니다.
※ 좋은 책을 제공하여 주신 출판사 심심에도 감사의 말씀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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