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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서평] 사람이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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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너무 강렬해서 책에 눈길이 절로 갔다. 사람이 싫다! 부정적인 문장임에 틀림없지만, 그 속뜻까지도 부정적인 건 아닐 듯 싶었다. 책날개를 통해서 작가가 변호사라는 사실을 알게 되자, 문장의 의미를 아주 조금 예상할 수 있었다. 사람이 싫어지게 된 이유를 들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이 책은 여러 면에서 의외의 구석이 많았다.

우선, 머리말에서 작가가 이렇게 선언했을 때 의외였다. “변호사는 글 쓰는 사람이다.” 많은 이들에게 그렇듯 내게도 변호사의 이미지는 조리있게 말을 잘 하는 사람일 뿐이었다. 하지만 열심히 법전을 뒤져서 사건과 관련된 법률을 확인하고, 재판 전에 법률 서면을 다듬어 제출하는 것이 주요한 업무일 터이니 일종의 작가이자 통역자라는 설명이 납득이 갔다.

목차를 보면서 거기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던 단어들을 발견했을 때도 의외였다. 과거 왕가위 영화의 낯익은 제목들- 아비정전, 타락천사, 중경삼림, 화양연화로 파트가 넷으로 나뉘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묶어놓은 이유를 알기 위해서라도 얼른 본문을 읽고 싶었다.

그런데 변호사들이 겪은 사연이란 얼마나 복잡하고 서글픈 것들일까?

 

 

본문으로 들어가기 전, 변호사법에 의거 정보 보호를 위해서 사연들은 모두 각색되었다는 안내 문구가 눈에 띄었다. 하지만 각색이란 점이 잘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묘사가 세밀하고 감정은 진솔했다.

“무조건 내 편이 되어 공감해달라는 고객의 요구. 한 걸음 떨어져 객관적으로 살펴보고 냉정히 대응해야 한다는 직업적 의무감. 정면으로 충돌한다. 이 갈등은 생각보다 팽팽하다. 때로는 관계 자체를 위협할 정도로 심각해진다. 가끔 법정에서 당사자인 것처럼 감정 몰입해서 폭발시키는 변호사를 목격한다. 연극 한 편 보는 느낌이다. 물론 승패 관계없이 사람들 앞에서 그런 한풀이 하는 게 목적인 퍼모먼스형 소송도 있다. 하지만 돈 쓰고 시간 쓰면서 그저 순간의 후련함을 얻을 뿐이다. 권하지 않는다. 고객이 서운해 하더라도 최대한 상대방 비방을 자제한다. 감정적 호소는 가장 마지막으로 미룬다. 나쁜 인상을 주지 않기 위한 노력이다. 물론 속 시원한 맛은 떨어진다. 하지만 판결문 받았을 때 웃을 수 있어야 진정한 승자 아니겠는가. 그게 진짜 변호사의 일이다.” - 본문 중에서

 

 

다행히 변호사를 찾을 일이 아직까지는 없었지만, 언젠가 변호사를 선임할 일이 생긴다면 나도 이러한 변호사를 얻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감정에의 호소는 한국인이라면 특히 빠지기 쉬운 함정이라고 생각한 적이 많기 때문이다. 법정에서 감정을 드러내거나, 공감을 구하는 행동은 당연히 자제해야만 승산이 높아질 것이다. 감정은 때로 문제의 해결과는 무관한 토로가 되기 십상일 테고, 그래서는 원하는 목적지까지 갈 수 없을 테니까.

‘브로커는 햄버거를 먹지 않는다’는 굉장히 흥미로운 파트였다. 법조계 브로커, 나로서는 듣도보도 못한 존재들이지만 그들이 엄연히 존재한다는 것이 신기했다. 왜 존재하는지, 어떻게 움직이는지 알고 나서는 역시 세상은 넓고 인간은 다양하고 알 수 없는 일이 많다는 것. 변호사와 브로커는 악어와 악어새 같은 관계는 아닐까 싶기도 했다. 다만, 그런 공생관계가 악용되어 이용자에게는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는 점은 꼭 새겨들을 부분이었다.

손수호 작가는, 아니 변호사는 말한다. “언제 칼 맞을 지 모른다” “제정신으로 살기 힘든 세상”.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말의 희망을 놓치지 않으려 애쓴다. 그렇기에 필드 위에서 여전히 고군분투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글로 그의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을까? 그랬으면 좋겠다. 상식적이지 않은 사람들로 가득한 이 세상은 언제나 송사와 고소고발이 끊이지 않을 것이므로, 좋은 변호사는 그래서 꼭 필요한 존재이므로.

 

 

 

※ 네이버 카페 컬쳐블룸 https://cafe.naver.com/culturebloom/1377302 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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