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다움, 그 중에서도 소위 순수문학에 가까운 소설다움을 보여주는 단편선이었다.
행동하지 않는 조용한 사람들-미국 중하위층의 평범한 소년, 사회적 지위를 얻었지만 남들 눈에 띄지 않게 살아가는 사람 등-이 주인공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침묵을 미덕이라고 생각하며, 가장 중요한 것일수록 비밀로 간직하고 살아가는 성향을 소중히 다룬다는 점에서도 그렇고. 또한 제임스 설터보다 훨씬 쉽게 쓰여졌다. 그래서 대중적으로 공감을 얻기는 더 쉬울 것 같다.
다만 특이한 점은 시간의 문제였다.
소설의 시제는 과거형이 기본이다. 생동감을 얻기 위한 신문기사 따위는 현재형으로 쓰이기도 한다. 하지만 미래형은 어떤가?
수록작 중 피부는 A4로 따지면 고작 한두 장에 불과할 소설이다. 이 소설은 가장 앤드루 포터다운 소설이기도 하다. 나머지 소설들이 바로 이 소설에서 파생되어 퍼져나간 다른 형태로 읽힐 정도로 말이다. 이야기는 현재를 묘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과거형으로 쓰여지다가, 갑자기 미래형으로 쓰여진다. 그러다 미래형이 계속 더 먼 미래로 나가는가 싶더니 다시 현재로 되돌아와 끝난다. 별 거 아닌 것 같은 얘기지만 소설에서의 시간을 아주 독특하게 다룸으로써 평범한 이야기를 소설이 되게 만든다.
이 작가는 시간은, 사람을 슬프게 만든다는 기본적인 명제를 증명하고자 하는 것 같기도 하다.
표제작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 역시 그 증명 중 하나이다. 번역가 후기에 따르면, 원제 The theory of light and matter 는 아마도 리처드 파인만의 저작 QED : The strange theory of light and matter 에서 따온 걸로 짐작된다.
아래는 검색을 통해서 찾은 QED, 즉 양자전기역학(Quantum electrodynamics)에 관한 리처드 파인만의 설명이다.
"양자역학은 모든 화학적 현상과 물질의 다양한 성질을 모두 설명할 수 있었으므로 엄청난 성공을 거둔 셈이다. 그러나 빛과 물질 사이의 상호작용은 여전히 문제점으로 남아 있었다. 즉, 전기와 자기에 관한 맥스웰의 이론도 양자역학이 제시한 새로운 원리에 부합되도록 수정이 가해져야 했던 것이다. 이리하여 빛과 물질의 상호작용을 양자역학적으로 설명하는 이론이 일단의 물리학자들에 의해 1929년 빛을 보게 되었으며, 거기에는 ‘양자전기역학’이라는 끔찍한 이름이 붙어졌다. (중략)
먼저 양자전기역학이 얼마나 많은 자연현상을 설명해낼 수 있는지를 상기해보자. 아니, 거꾸로 말하는 게 더 쉬울 것 같다. 즉, 양자전기역학은 몇 가지를 제외한 모든 자연현상을 설명해주고 있다. 그 몇 가지의 예외란 여러분을 의자에 붙잡아두고 있는 중력현상과(물론 내 생각에는 중력과 연사에 대한 예의가 혼합된 현상이지만) 핵자의 에너지 준위를 변형시키는 방사능 현상이다. 만일 우리가 중력과 방사능(정확하게는 핵물리학)을 제외한다면, 자동차의 엔진에서 끓고 있는 가솔린, 거품 현상, 소금과 구리의 딱딱한 성질 및 강철의 견고한 구조 등은 이해할 수 있다. 실제로 생물학자들은 생명현상까지도 가능한 한 화학적 원리로써 설명하려고 하는데, 내가 이야기한 대로 화학보다 더욱 근간을 이루는 이론은 양자전기역학인 것이다."
결국 앤드류 포터는 빛과 물질의 상호작용을 설명하는 양자전기역학처럼, 자신의 소설이 마음 속 빛과 물질의 상호작용을 설명하길 바랐던 게 아닐까?
PS. 빛도 곧 물질이라는 점에 대해서, 다음의 기사는 참고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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